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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위키 영화 서울의 봄 다시보기 주소 링크

옆집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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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위키 영화 서울의 봄 다시보기
티비위키 영화 서울의 봄 다시보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티비위키에 업로드된 개봉 65일 만에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다시 보기 주소를 링크해 드립니다.

이미 극장에서 관람하셨던 분들께서도 집에서 서울의 봄 영화를 다시 보시면서 1212사태의 주범들의 한국의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한 더러운 권력에 대한 지나친 욕망에 대한 분노와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반전을 이루어낸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고 이를 계승하겠다고 다짐해 봅시다.

영화 서울의 봄 간단 줄거리

박 대통령의 암살 이후, 계엄령이 선포된다.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과 그를 따르는 장교들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대가 정치적 행동을 해선 안된다고 믿는 완고한 군인인, 수도방위사령관 이태신은 전두광을 막기 위해 그와 맞서기로 한다. 그들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대혼란 속에서 모두가 갈망하던 서울의 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티비위키 차단 막힘 우회 접속 방법 설명

티비위키의 최신 접속 주소와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을 때 해결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접속을 우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빠르고 편리한 티비위키 사이트 접속 방법은 크롬 브라우저에서 구글 DNS로 변경하는 것입니다.

만약 올바른 티비위키 접속 주소을 입력했는데 사이트가 접속이 안되면 우회 접속해야 합니다.

티비위키의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티비위키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법적 처벌이 가능한가요?

법적으로 보면, 티비위키를 단순히 시청하는 행위 만으로는 처벌을 받기 어렵습니다. 이는 인터넷상의 모든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전에 그 사이트가 정식 사업자인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웹사이트인지를 사용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티비위키의 도메인 주소가 계속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티비위키는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업체로, 한국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기관들이 이런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단 조치를 피하고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티비위키는 자신들의 도메인 주소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있습니다.

티비위키와 누누티비는 어떤 관계인가요?

누누티비는 2023년 4월 14일에 서비스를 중단하였습니다. 그 이후 약 두 달 후인 6월 10일에 누누티비 운영진이 새로운 사이트인 티비위키를 개설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서, 누누티비의 서비스를 이어받아 티비위키가 새롭게 열린 사이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티비위키(TVWIKI) 안드로이드 앱지원

다른 다시 보기 OTT 사이트들과 좀 더 편리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사용자 편의를 위해 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아이폰에서 지원은 아직 안되고 안드로이드 앱으로는 이용이 가능합니다.

티비위키 APP 다운로드 방법 안내

티비위키 앱을 통하여 좀 더 편리하게 접속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티비위키 APP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 : 티비위키 앱에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을지 걱정되는데 믿고 설치해도 되나요?

A : 앱 자체는 최소한의 기능으로 제작 되어 있으며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권한 또한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정보를 탈취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안심하시고 다운로드하셔도 됩니다.

Q : 앱 자체에 크롬캐스트를 지원하나요?

A : 크롬캐스트가 앱 자체에 내장되어 있으며 크롬캐스트가 연결되어 있는 환경이시라면 편리하게 사용 하실 수 있습니다.


Q : IOS 지원 계획이 있나요?

 

A : 아니요 IOS 지원계획은 없습니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버전만 제공 됨을 알려드립니다.

티비위키(TVWIKI) 앱 다운로드 방법

공식 앱스토어에선 다운로드가 불가능하며 수동 설치 (APK) 파일을 다운로드하셔야 합니다.

 

티비위키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바로가기

티비위키에서 제작한 안드로이드 APK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기기에 수동으로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아래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하기" 버튼을 클릭후 APK 파일을 다운로드 진행해 주세요.

 

이후 다운로드 팝업이 표시될 경우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 후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다.

 

다음 단계로 진행을 진행하셨다면 "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시겠습니까?" 문구가 표시되며

설치 버튼을 누르면 성공적으로 설치가 완료됩니다.

 

이후 설치가 완료되면 티비위키 앱을 자주 쓰는 공간에 배치하시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 APK 파일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경우 설치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휴대폰 설정 ->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허용 설정을 진행해주시거나

 

다운로드한 브라우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허용을 진행 해주셔야 합니다.

 

APK 파일 설치방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읽기위 링크를 클릭하면 좀더 자세한 설치 방법에 대해 많은 글이 있으니 참고하여주시길 바랍니다.

 

티비위키 (TVWIKI) 접속 우회 방법에 대한 가이드 안내

 

한국 정부에서 수시로 차단하는 관계로 앞으로는 사용자 여러분이 아래 우회 방법을 통해 접속해주셔야 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원활한 사이트 운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방법을 채택한 점 여러분들께서 넓은 아량으로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이 우회방법 포스팅 글에서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DNS 서버주소를 변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본 통신사 DNS 서버를 그대로 사용할 경우 접속이 불가능함을 꼭 기억해주세요. 또한 보안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의 DNS 서버를 변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티비위키 공식 텔레그램 주소 : https://t.me/tvwikiurl

 

티비위키 공식 주소 알림 페이지 주소 : https://telegra.ph/tvwiki-06-09

 

티비위키 영화 서울의 봄 주소 바로가기 링크

서울의 봄 영화 보기

https://tvwiki.me/kr_movie/22971#31f63486p8d01UOp 

 

서울의 봄 다시보기

박 대통령의 암살 이후, 계엄령이 선포된다.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과 그를 따르는 장교들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대가 정치적 행동을 해선 안된다고 믿는 완고한 군인인, 수도방위사령관

tvwiki.me

티비위키(TVWIKI) 는 제2의 누누티비입니다.

티비위키(TVWIKI) 서비스는 이전에 활동하던 누누티비의 팀이 2023년 6월 10일에 새롭게 창설한 무료 OTT 플랫폼으로 티비위키와 누누티비 사이에는 여러 재미있는 공통점들이 존재하며 이 중 하나는 동영상 주소입니다.

아래 주소는 누누티비 시정 카지노1 재생 링크인데 누누티비의 영상 재생 주소 부분 중 앞 부분만 티비위키 도메인 주소로 바꾸고 재생시키면 그대로 재생됩니다.

 

누누티비 주소 : https://noonoo36.tv/drama/25391

티비위키 주소 : https://tvwiki.me/drama/25391

 

위와 같이 누누티비가 보유했던 다양한 자료들이 그대로 이곳 티비위키에 남아있으며, 티비위키는 구글 크롬캐스트를 완벽하게 호환하는 것이 주요한 특징으로 꼽힙니다.

티비위키의 개요

티비위키는 통상적으로 '무료 다시보기' 불법 사이트로 공식적인 유료 OTT(Over-the-top) 서비스 업체의 승인 없이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즉,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공인된 유료 OTT 서비스 업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스트리밍 하는 사이트입니다.

티비위키의 특징과 장점

티비위키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와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 메뉴 구성도 깔끔하며 재생하기 화면에서 바로 영상 재생이 가능하여 무료 영화 다시 보기 사이트 추천 사이트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TV 다시 보기 사이트와 달리 티비위키는 다양한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이트로 사용자 친화적 UI와 한 눈에 들어오는 인기 프로그램 카테고리 등으로 편리하게 시청이 가능합니다.

 

인기 영상이나 카테고리를 세분화시켜 쉽고 빠르게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나 영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TV 드라마 예능 다큐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물론 애니메이션, 해외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편하게 시청 가능합니다.

 

신속한 업로드

약속 등으로 보고 싶은 본방 드라마를 놓쳤을 때 두 시간 정도 이후에는 업로드되기 때문에 본방을 놓치더라도 빠르게 시청이 가능합니다.

카테고리 세분화

상단 메뉴 중 카테고리를 누르면 한국영화, 해외영화, 극장판 애니메이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다큐 시사, 애니메이션, 해외드라마, OTT 드라마, OTT 예능, OTT 다큐, 추억의 드라마, 추억의 예능 등으로 장르를 세분화시켜서 보고 싶은 영상을 빠르게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세분하였으며 또한 검색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직접 제목이나 초성으로 검색하여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편리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티비위키는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처럼 깔끔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큼직한 썸네일로 영화나 드라마를 바로 찾아볼 수 있으며, 클릭하면 광고가 조금 있지만 별도의 재생창으로 이동하지 않고 현재 페이지에서 영상을 재생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티비위키 메인화면

티비위키 메인화면

한눈에도 직관적으로 들어오는 편리한 인터페이스가 장점이고 기본 내비게이션 메뉴는 인기 영상 카테고리이며 카테고리를 누르면 여러 장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각 메뉴마다 개봉일 최신순, 개봉일 오래된 순, 평점 높은 순, 평점 낮은순, 조회수 높은순, 좋아요 높은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렬 방식으로 해당 영상의 썸네일을 보여주기 때문에 보고 싶은 장르의 영상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속한 업데이트

티브이위키의 또 다른 장점은 콘텐츠의 업데이트가 빠르기 때문에 최신 콘텐츠를 바로 확인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 많은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재생하기 플레이어도 깔끔하고 화질이 좋으며 속도가 빨라 끊기지 않고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티비위키의 재생화면

티비위키는 다른 무료 OTT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재생 화면이 깔끔하게 제공됩니다. 시청자들은 별도의 새 창을 열거나 링크를 클릭할 필요 없이, 현재 창의 플레이어에서 바로 콘텐츠를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와 같은 시리즈물의 경우 회차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을 제공하며, 드라마의 경우 간단한 줄거리를 제시하여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재생화면에 들어가면 화면 터치만으로 재생이 멈추고 두 번 탭을 하면 다시 재생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다큐등을 최신일자 기준으로 업로드해 보여주기 때문에 놓치는 회차 없이 보고 싶었던 회차부터 시청이 가능합니다.

또한 재생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사용자들이 자신의 선호에 맞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으며, 고화질의 영상과 빠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들은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

티비위키는 장르별로 방대한 자료가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다른 무료 OTT 사이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공하는데 비해 이 곳은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애니까지 무척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화면 구성으로 사용자들이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각 장르별 인기 순위를 제공하여 사용자들이 보고 싶은 작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재생하기 플레이어 화면

재생하기 화면은 최신 해외 인기 영화 웡카 다시 보기 영상을 예시로 보여드립니다. 다른 다시보기 사이트처럼 링크를 클릭하면 광고창을 여러 개 띄우고 영상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창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것은 아주 편리한 점입니다. 배너 광고가 플레이어 위에 뜨긴 하지만 엑스 버튼을 누르면 바로 사라져 영상을 보는데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티비위키의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티비위키를 시청하는 것 만으로도 법적 처벌이 가능한가요?

법적으로 보면, 티비위키를 단순히 시청하는 행위 만으로는 처벌을 받기 어렵습니다. 이는 인터넷상의 모든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전에 그 사이트가 정식 사업자인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웹사이트인지를 사용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티비위키의 도메인 주소가 계속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티비위키는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업체로, 한국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기관들이 이런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단 조치를 피하고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티비위키는 자신들의 도메인 주소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있습니다.

티비위키와 누누티비는 어떤 관계인가요?

누누티비는 2023년 4월 14일에 서비스를 중단하였습니다. 그 이후 약 두 달 후인 6월 10일에 누누티비 운영진이 새로운 사이트인 티비위키를 개설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서, 누누티비의 서비스를 이어받아 티비위키가 새롭게 열린 사이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 서울의 봄 관련 기사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길고도 긴박했던 아홉 시간을 재구성했다.

 

지난해 11월 22일 개봉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관객 1천만 명, 다시 한 달이 지난 1월 27일에 13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영화사상 다섯 번째 기록이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12.12 이후 태어난 2030 세대가 흥행을 주도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 데다 답답함과 울분이 치솟는 영화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현상은 이례적이었다.

 

1979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한국의 정국은 문자 그대로 격랑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10.26)과 유신 독재의 종말, 전두환의 군사 반란, 폭발적인 민주화 열망, 신군부의 광주 학살(5.18)과 집권까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전두환과 신군부 일당은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고, 정부는 군부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1980년 5월 17일 저녁, 국무회의는 군부의 각본대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자정 발효)를 의결했다. 전국의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고, 주요 도시의 대학들에는 계엄군이 배치됐다. 바로 다음날, 반란군은 광주에서 권력 찬탈의 핏빛 마침표를 찍을 화려한 휴가(작전명)를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지켜본 집단이 있었다. 미국이다.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군 정보기관들은 한국의 정치적 격변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거의 실시간으로 본국에 보고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5.18 기록관)이 지난해 말 출간한 5.18 민주화운동기록물자료총서(이하 총서) 5~7권은 한국의 격변 상황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대응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1979년 10.26 직후 미국은 긴급히 한국 관련 정책검토위원회(PRC)를 구성하고 관련 기관들이 민감한 정보를 작성. 공유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 팀 셔록은 1993~1995년 사이에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기관 문서들을 입수해 세상에 처음 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에도 일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우리말 번역본으로 묶여 나온 것은 처음이다.

 

셔록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국방정보국(DIA). 중앙정보국(CIA)과 주한 미국대사관 등이 작성한 문서들을 주제와 시기별로 분류했고, 2017년 기록관에 모두 기증했다. 16개 상자, 문서 1256건, 353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기록관은 곧바로 전문 번역을 시작했고, 셔록의 분류를 기본으로 편집과 감수를 거쳐 세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왼쪽 지면에 미국 문서 원본 사진을, 오른쪽에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번역문을 나란히 실었다.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제5권 미국이 바라본 5.18 민주화운동의 서막은 12.12 직후부터 5.18 직전까지 관련 문서들을 수록했다. 제6권 미 국방정보국(DIA), 5.18을 목격하다에는 광주항쟁 시기인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미국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문서들만 추려 모았다. 제7권 5.18과 다양한 시선들에는 국무부, 주한 미국대사관, 백악관, 미국 중앙정보국 등 미국의 핵심 기관이 5.18 당시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과 동아시아 정세까지 판단한 문서들을 편집했다.

 

책에는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비롯해 주목할 만한 내용이 많다. 미국은 12.12의 첫 순간부터 사태를 면밀히 지켜보고 그 의미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이날 저녁 미 국무부가 백악관, 주한 미국대사관, 주한 유엔군사령관(미군), 미 국방부 등을 수신처로 보낸 한국에서 군부의 실력행사 발생 문서의 일부 항목을 보자.

 

서울 시각으로 12월 12일 초저녁, 전두환 보안사령관 및  일단의 한국군 장교들이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 장군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서울 남부 중심지(용산)에서 몇 발의 총성이 들렸으나 사망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음.

 

초기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3개 요구조건이 비밀리에 전달되었음. 계엄사령관 교체, 제3군 사령관 교체, 그리고 조금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직위자 한 명의 교체였음. 이 요구조건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계엄사령관 임명을 지시한다는 것은 중대한 권력 장악을 의미하는 것임. 12.12 이후 한국 군부 안에서 전두환 파벌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도 흥미롭다. 1980년 1월 9일 미 국방정보국 정보요원이 작성한 첩보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한국공군 및 해군의 일부 고위 멤버들이 1979년 12월 13일 육군의 권력 장악 사건을 주도한 전두환 소장이 사임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억제되지 않으면 그와 그의 파벌에 대한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 함.

 

이들은 전두환이 계속해서 최규하 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면 해병대를 동원하여 그 파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함.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 실무진의 최고위직인 리처드 홀브룩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와 긴밀하게 연락하며 자신의 의견도 덧붙였다.

 

글라이스틴은 12.12 쿠데타 직후 한동안 전두환과의 면담조차 꺼리며 신군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전두환의 행태에 우려를 표명하고 모든 정치세력의 자제를 촉구하는 의견도 수차례 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 끌려가다가 결국은 한국의 안정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전두환 군부를 인정하는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책에 반영됐다.

 

글라이스틴은 1980년 1월9일 정책 판단 보고에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미국의 이해관계는 변함이 없지만 전례 없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음.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우리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집단들에게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임이라고 썼다.

신군부, 북의 남침 가능성 부풀리고

서울의 봄이 좌절되고 신군부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가 막판으로 치닫던 1980년 5월 7일, 글라이스틴은 홀브룩에게 한국 문제: 비공식 정책검토라는 제목의 전문을 보냈다.

 

핵심은 이렇다. 우리의 기본적인 정치 분야 목표는 정치적 안정 유지에 필요한 긴장 완화가 어느 정도 될 수 있도록 지원하되, 긴장 완화의 수준과 방법은 한국인들에게 맡겨 놓고, 전두환과 관련한 우리의 목표는 그가 한국인들―그리고 한국군―이 용인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추는 것임. 이날과 그다음 날 글라이스틴과 미국 국무부가 주고받은 전문은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의 시민 유혈진압을 묵인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주목된다. 5월 7일 글라이스틴은 홀브룩에게 보낸 또 다른 전문 한국 정부, 특수부대 이동에 이렇게 썼다.

 

한국군은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력을 이동시킨다고 미군 지휘부에 통보하였음. 5월 8일, 제13공수여단을 서울 남동쪽 특수전센터로 이동. 5월 10일, 제11공수여단을 김포반도로 이동, 제1공수여단과 함께 배치.

 

미군 지휘부는 포항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제1사단이 대전/부산 지역에 필요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음. 해병대 제1사단은 연합사 작전통제 병력이며 이동을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이 필요함.

 

유엔군사령관은 요청이 있을 경우 승인할 계획임. 다음날인 5월 8일 미국 국무부는 홀브룩의 직속상관인 워런 크리스토퍼 동아시아 차관 명의로 한국의 글라이스틴에게 보낸 전문에 한국 정부의 긴급 비상계획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이에 대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이재의 전문위원은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가 민주화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내부적으로 공식화한 최초의 문서로 봐도 된다며 (한국의 정변 사태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 가장 중대한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글라이스틴이 다음날인 5월 9일 전두환을 만나 미국의 방침을 말하자 전두환이 쾌재를 불렀다. 5월 10일에는 전두환 쪽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북한군의 남침 가능성을 언급한 일본의 문건을 입수하고 이를 부풀려 5월 12일 국무회의 때 신현확 총리에게 보고했다. 그때부터 정부 쪽도 시위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쪽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과 미 국무부는 그 뒤로도 긴밀한 정보 교환과 의견 조율을 이어갔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980년 5월 17일, 글라이스틴은 서울에서 탄압 사태 발생이라는 제목의 전문을 본국에 보냈다.

 

한국 군부는 (삭제) 한국 정부의 합법적인 권한을 무시한 채 학생들 및 정치권 전반에 걸쳐 강경한 탄압을 시작하였음. 군부의 완전한 실권 장악이 진행되고 있는 듯함.

 

한국 전체로 비상 계엄령이 확대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음. 이는 절차적으로는 계엄사령관이 국방장관이 아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부가 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함.

 

우리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절대로 통보를 받은 바 없음. 군부 지도자들은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너무 부드러웠다며 극도로 불만을 갖고 있다 함.

 

우리가 공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최규하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에게 본직이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대표하여 얘기할 수 있도록 최고위층으로부터의 지침을 내려주시기 바람. 글라이스틴이 요청한 지침은 바로 다음날인 5월 18일 오후 1시(미국 동부시각) 국무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서로 발표됐다.

한국 전역으로 계엄령이 확대된 것과 대학 폐쇄, 그리고 일부 정치 및 학생 지도자들이 체포된 것에 깊은 우려를 표명함.

 

우리는 한국 내 모든 세력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제를 갖고 행동하기를 촉구함.  미국 정부는 조약상의 의무에 따라 한국의 현재 상황을 악용하려는 그 어떠한 외부 시도에도 강력히 대응할 것임. 그러나 미국의 모호한 판단과 대응은 전두환 신군부에는 행동의 족쇄를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5월18일 새벽 1시께 보안사령부(사령관 전두환)는 김대중. 김종필 등 주요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을 전격 체포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점령했다. 이날 아침에는 광주 전남대에서 학생들과 계엄군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 불과 몇 시간 만에 광주 시민과 신군부의 전면 대결로 확대됐다. 학생과 시민을 가리지 않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과 만행이 불을 댕겼다. 그렇게 광주항쟁이 시작됐다.

 

5.18 기록관은 이번 자료 총서 중 두 번째 권에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의 광주항쟁을 중심으로 미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문서들만 선별해 수록했다. 정보 출처는 대부분 삭제됐다. 그러나 일부 문건은 한국군 내부의 협조자에게 확보했거나 한국군 정보기관의 자료를 거의 그대로 영문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5월 21일 낮 1시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에게 집단 발포한 사건을 생략한 채 그 45분 뒤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벌어진 상황을 5~10분 단위 실시간으로 촘촘하게 기록한 광주폭동: 80년 5월 22일 10:00 현재 상황은 당시 국군 보안사가 작성한 일일 속보철과 거의 비슷하다.

 

―13:45: 도청 앞에 집결한 폭도 중 30대 성인 몇 명이 확성기를 이용하여 오늘 밤 우리의 공격 목표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와 보안부대다라고 외쳤음. 모여 있던 군중들이 크게 환호하였음.

―15:05: 미상 숫자의 폭도들이 화순 무기고에서 40 정의 무기를 탈취하여 광주로 향하였음.

―16:28: 폭도들이 광주시내에 있는 호남전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150정과 실탄 900발을 탈취하였음.

―16:50: 도청에 주둔하고 있던 공수부대가 조선대학교로 철수하였음.

―17:50: 전남대학교에서 계엄군과 폭도 간 교전이 발생하였음. 조선대학교에서는 계엄군이 폭도에게 발포하였음.

―18:10: 이날 밤 교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발표가 있었음.

―20:45: 광주공원과 무등경기장에 폭도들이 모여  21:30 도청을 무력으로 접수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음.

―00:15: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부대로 향하는 접근로를 차단하였음.

―06:15: 광주시내의 높은 건물들은 무장한 폭도들에게 점령당하였음.

―09:45: 광주 지역의 폭도들이 공수부대의 광주 진입을 두려워해 완도 등 섬 지역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음.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앞 광장 건너편 전일빌딩 245의 9층 전시관에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 중심부 위로 군용 헬기가 날고 있는 모습을 재연한 축소 모형이 전시돼 있다. 전일빌딩245의 외벽과 실내에는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사격 증언을 입증하는 탄흔 245개가 남아 있다.

 

또 다음날 작성된 80년 5월 23일 12:00 광주 상황 문건에는 냉전 대결 시기 한국 군부와 미국의 반공. 반북 이념을 그대로 옮겨놓은 섬뜩한 대목도 있다.

 

현재 상황은 여수 순천 반란사건과 유사함(원문 역자 주: 1948년에 발생한 사건임).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강경하게 현재 상황을 진압해야 함. 미국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의 최후 항쟁을 진압하기 하루 전에 작전 계획을 미리 통보받았다. 5월 26일 발신처가 삭제된 채 국방정보국 본부와 태평양공군사령부(하와이) 등을 수신처로 지정한 광주에 대한 병력투입계획/서울에서 시위 가능성 보고의 일부 대목은 이렇다.

 

광주시 외곽으로 병력이 진입하였고 소탕 및 정리작전을 개시하였음. 금일 밤 또는 내일 아침 일찍 폭도들을 체포하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병력이 광주시내에 대규모로 진입할 계획임. 폭도들은 상황 해결을 위한 민간 위원회에 무기를 반납하고 있음. 그러나 학생과 깡패들이 그 무기를 다시 가져갔음.

 

전라남도 출신 고려대 및 서울대생 대부분과 서울지역 다른 대학교에 있는 전라도 출신 학생들 다수가 광주로 내려갔음.

 

계엄군이 전남도청의 최후 항쟁을 진압한 이틀 뒤인 5월 29일, 광주사건 관련 북한의 의도 및 관점이란 제목의 문서는 5.18 당시 북한 위협론이 근거가 없으며 전두환 중장은 자신의 미래가 광주폭동의 성공적인 종결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 광주 진압 지원 한국 국민에게 사과해야

이번 총서 5~7권의 번역과 편집에 참여한 한 조사관은 팀 셔록 기증 문서 전체를 번역하다 보니 큰 흐름이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초기에 정보 파악이 잘 안 됐고 혼란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 가능성을 우려했어요. 당시 지미 카터 정부에서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1순위가 안정, 그다음이 민주주의였습니다.

 

전두환을 지원하지 않지만 적극 말리지도 않고 방관하는 흐름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재판 때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김대중에게 사형 선고(1981년 1월 대법원 확정)가 내려진 뒤로 전두환 승인과 김대중의 생명을 맞바꾸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년 1월 취임)을 만나게 해 준다는 약속이 그 신호였습니다.

 

셔록은 이번 총서 발간 직후 이재의 전문위원에게 내가 입수한 5.18 관련 문서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라며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1989년 한국 국회가 전두환의 광주 범죄에 대한 첫 청문회를 열었을 때,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는 1979~1980년 새 한국 정책에 관한 장문의 백서'를 발표했는데, 내가 광주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와 모순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셔록은 메시지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언젠가 미국 정부가 1980년 5월 전두환의 광주항쟁 진압을 지원한 것에 대해 한국 국민에게 공식 사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광주 시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 12.12부터 5.18까지 미국이 한국의 정치적 격변을 지켜보고 논의한 비밀문서들을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정리해 우리말 번역본으로 출간하기까지는 이재의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의 힘이 컸다. 그는 이번 총서를 감수하고 서문을 썼다. 이 전문위원은 오월 광주의 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출판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년, 황석영 기록, 풀빛 펴냄)의 실제 집필자이기도 하다. 흔히 넘어 넘어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245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전일빌딩 245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 건너편에 있다. 1980년 5월 당시 주변에서는 최고층 건물이었다. 맨 위층인 10층의 외벽과 실내에서 총알 자국 245개가 발견되면서 빌딩 이름 뒤에 245라는 숫자가 붙었다. 이 탄흔은 5.18 당시 계엄군이 공중에서 헬기 사격을 했다는 다수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됐다.

5.18 당시 나는 3년 군복무를 마치고 막 복학한 신분이어서, 첫 엿새 동안 피신하지 않고 광주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지켜봤다. 계엄군이 집단 발포 뒤 퇴각한 22, 23일에는 도청 상황실에서도 일한 덕분에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광주항쟁이 진압된 뒤엔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계속 만들어 배포하다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고 이듬해(1981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취업도 못해 근근이 살다가 1984년 가을에 학적이 복적 돼 복학했다. 그해 10월쯤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전청협)에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려는데 내가 적임자라며 집필을 제안했다.

 

당시 두 달 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참에 이걸 쓰면 또 감옥행이 뻔해서 잠깐 고민을 했는데, 이게 역사적으로 너무 중요한 일이잖나. 그때까지는 군부의 기록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신혼방이 넘어 너머를 펴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확인 취재를 하는 비밀 아지트가 됐다.

 

모두가 몇 달을 밤낮없이 매달린 끝에 1985년에 초고를 완성했는데,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이 썼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신분상의 위험도 컸다. 마침 그때 광주에 있던 황석영 작가가 원고들을 정리. 편집하는 수고까지 맡아주면서 자기 이름을 기록자로 내세워줬다. 2017년 개정판에는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까지 함께 작업한 3인의 이름이 들어갔다. ―이번 총서 발간의 의미는?

 

1979~1980년 사이에 미국의 여러 기관이 한국 상황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문건들은 국내 공식 문서들이 많은 사실을 감추고 왜곡한 것과 달리 팩트에 충실하고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물론 철저히 미국의 시각으로 쓰였고 미국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고 본다면, 당시 미국의 태도와 정책까지 포함한 진실에 더 접근할 수 있다. 이번 총서는 1979년 12.12 반란이 어떻게 이듬해 5.18로 연결이 되는지, 전두환이 어떻게 실세로 등장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편집했다. 특히 이전까지는 일부 전문가나 연구자들만 부분적으로 볼 수 있었던 미국 문서들을 한데 모아 일반인들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중요하다.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는가?

문서마다 수신 기관과 배포처가 많은데, 긴급 정보들을 누가 공유하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주한 유엔군사령관, 미군 태평양 공군사령부(하와이), 미국 본토의 각군 참모총장, 일본 주재 미국대사관과 주일 미군사령부,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가 주요 수신처 또는 참조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팀 셔록도 차음엔 간과했다가 문서들을 계속 검토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에 주목했다. 이 경로가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모든 군사작전 계획은 미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우산 아래에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일본이 중심축이고 한국은 그다음, 전술적 배치로서의 위상이라는 거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의 과정과 이유를 총서에 실린 문서들로 알 수 있는가?

전체 흐름을 보면, 리처드 홀브룩(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시 홀브룩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의 직속 상급자였는데, 둘은 호흡이 잘 맞았고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홀브룩이 전두환을 밀어주자는 생각을 먼저 밝혔고 글라이스틴은 거기에 맞춰 계속 생각을 바꿔나갔다. 가장 결정적인 게 5월 22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PRC)다. 5.18 기간에 미국에서 광주 문제를 논의한 건 그게 유일하다.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가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합참 의장 등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급 인사 15명이 참석했다. 홀브룩은 그 회의 직전까지 계속 글라이스틴에게 광주 상황을 묻고 의견을 나눴는데, 결국 둘의 판단이 일치하게 되는 식이다. 2017년 광주 문화방송(MBC)은 그 회의 내용을 기록한 닉 플랫 메모를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미국이 광주에서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계엄군의 무력 사용을 용인한 내용이 담겼다. 5.18 기록관은 이번 총서 세 번째 권에 그 원문을 수록했다. 백악관이 결론 요약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문서의 전문은 이렇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토의 결과, 향후 더 큰 불안의 씨앗을 뿌리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하여 한국 당국이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음. 일단 질서가 회복된 다음 한국 정부, 특히 군부를 압박하여 보다 많은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였음. (2급 비밀) ―총서가 미국 기관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양식과 용어까지 직역한 것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들이 많다.

 

원본 문서들의 분량이 방대하다. 또 동일한 사안들을 미국의 여러 기관이 보고하다 보니까 겹치는 내용도 많다. 셔록이 자신이 입수한 모든 자료를 2017년에 광주에 기증하면서 나와 함께 두 달간 분류 작업을 했다. 이번 총서도 그때 셔록이 분류한 기준을 기본으로 삼고 그중에도 5.18과 관련된 중요한 문서들을 선별해 재구성했다. 사건 발생의 배경과 의미까지 전체 맥락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총서 세 권의 각 장의 해제에 담았다. 그와 별개로, 이 자료를 제대로 독해할 수 있도록 일종의 가이드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것까지 써야 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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